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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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랭클 박사가 직접 아우슈비츠에서 경험한, 가장 비참하면서 지옥보다 극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 하는 책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재산, 가족, 자유 어느 하나 없는 곳에서 주위 사람들이 어떠한 감정변화를 겪고 행동하는지, 정신과 의사인 저자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각을 읽는 내가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묘사 한다.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천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퍼센트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그 화장터의 문에는 여러 나라 말로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ㅜ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 에다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 - 그 자산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띄고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것 이라는 사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음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가결한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긴장이 없는 상태)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역동성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세가지 방법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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