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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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책읽는 방법, 주관적인 자신의 책읽기를 갖는다는 뜻 같다. 책을 읽고 잘 소화하자 -> 내것으로 만들자.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신에 대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광학기구에 불가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자신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 내용을 내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대체 하려 할 때 몸과 마음은 수동적으로 책들에 손을 뻗어 닿기만 하면 되는 물질적인 것이며, 위험한 존재가 된다.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변의 모든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작은 근육 하나조차 의미를 가진다.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어떠한 일반론도 각자의 삶의 특수성앞에서는 무력하다.

아름다움은 아득히 먼 곳에서 빛나는 별빛 같은것. 가까이 다가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많이 읽는 것보다 느끼는게 중요하다. 제대로 읽는 것.

외형상 생글게 짜여진 그 문자 기호들 속으로, 몇가지 지침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느낌과 마음을 들이밀면, 거기 새로운 풍경이 살아서 떠오를 것이다.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삶의 아름다움은 미래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바로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나쁜 행동을 기억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다. 다른사람에 대한 불평은 나의 단점을 보지 못한것이다. 관인엄기 하자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을 떠나라.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더나은 better의 세계라면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different의 세계. 게임은 better(기술)과, different의 세계인거 같다.

예술가의 마음속에 불멸을 바라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과대한 야심이 반드시 있어야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즉 나는 죽지만 내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 일시적인 흥행, 유행을 넘어서야 한다. 게임도 예술이라면 이런 사명으로 만들어야할까?**

서정시의 내용은 시인 그 자신이다. 서정시인은 자신의 내면 세계에 언어를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느끼는 감성과 영혼의 상태를 독자의 심증에서 일꺠우려 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서정세계의 폐허 위에서 태어난다.

하찮은것 하나라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작가다. 게임도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better과 different를 추구하지 않을까?

가장 널리 퍼진 인간의 환상 가운데 하나 즉 우리 삶이 단순한 배경이나, 아니면 항상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우리의 자아가 단순히 지나치는 우연적이며 바뀔 수 있는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환상을 내포한다. 자신의 다른 삶, 가능한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몽상은 그만. 우리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절망적으로 못박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속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사회현상의 실존적 영향력은 그것이 팽창할 때가 아니라 더할 나위없이 미약한 상태인 초창기에 가장 날카롭게 인지될 수 있다.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낀다.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있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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